소소한 일상의 흔적/내 마음속 기억

아빠 힘내세요^^

찌에르 2010. 10. 27. 23:40

저녁무렵 병원에 다녀왔어요.

마음이 뭐랄까..심란하다기도 뭐하고..우울한것도 아닌데 툭..하고 건딜면  울것 같아요..

2주전 건강검진을 받으신 친정아바지께서 지난 금욜에 위암초기 진단을 받으셨어요..

월요일 동생과 함께 모시고 가 대학병원에서 재검을 받으셨고 바로 목요일 수술을 하기로 결정했어요.

수술전날인 오늘 저녁 간단한 절차후 입원하셨어요..

올해 77세이신 아바진 지금까지 연세에 비해 십년은 젊어 보이신단 말씀을 달고 사실 정도로

건강하시고 활동적이셨죠.

이북 황해도 출생으로 중학교때 6.25가 발발  젤 큰형과 누님 한분 이렇게 삼남매가 월남을 하셨대요.

보리쌀 2말을 주시며 이것만 먹고 돌아오란 할머니 말씀을 뒤로 영영 60년 생이별을 하신거죠.

큰아버지 덕분에 학업을 마치시고 공무원 생활 하시며 첫눈에 반한 울오마니 만나 남매를 두셨죠..

손재주가 많아 뭐든지 잘 고치셔서 별명이 맥가이버시고 늘 눈웃음에 유머 또한 남달라서

또다른 별명이 치킨 할아버지셨죠..

우리 아이들이 어릴적 캔터* 치킨 코너 앞에 서있던 풍채 좋은 할아버지 보고

울할아버지다~!! 하는 바람에 별명추가^^

제 어린시절엔 유독 아빠랑 함께한  기억이 많아요..

월급날이면 늘 전기구이 통닭과 한달에 한번 나오는 어린이 중앙 이란 잡지책을 사오셨고

쉬는 날이면 남산 어린이 회관이며 어린이 대공원 창경원 같은곳을 데리고 다니길 좋아하셨죠..

중학생 되면서 아바지랑 영화 보러 자주 갔었는데 007 시리즈 주인공인 로저무어 나 숀코네리에게

뻑이갔었다는..로미오와 줄리엣도 아바지랑 같이 봤네요..

식성부터 외모까지 딸인 제가 아들보다 당신을 더 많이 닮은것을 신기해 하셨고

늘 경희 아빠로 불리시는걸 좋아하셨죠..

늘 내편이셨고 잘한다 넘치는 칭찬을 주셨고 믿어주셨죠..

결혼후 신혼집 보일러나 전등이 나가도 직접 고쳐주셨고 쌀과 석유를 선물로 주시는 산타셨죠..

남푠의 사업이 위기에 설때마다 늘 든든한 지원군을 자처하셨고 지금까지도 당신꺼는 아까워 하지않고

내주셨죠.늘 받는것에 익숙한 못난 자식은 이 나이 먹도록 너무나 당연히 여기고 산것들이

아바지 피땀이었단 사실을 잊고있었죠.

사실 동생과 전 다른건 몰라도 부모님 복은 타고 났다고 농담처럼 말하곤 했죠.

오늘까지 두 분 다 건강하셔서 병원 신세 한번 안지셨고 나름 경제력 있으셔서 편한 노후를 보내시는데

걱정이라면 많지도 않은 자식들이 사업하다 말아먹고 아직까지 애물단지라는거..

다행이도 조기발견이라 위 절제수술까진 아니고 위벽세포조직을 잘라내는 수술이라 환자에게

훨 부담이 적은 시술이라 수술후유중도 적고 지속적인 관리만 잘하면 다른 암에 비해 회복율이 높다고..

설명을 듣고나니 하늘이 무너질듯한 충격에서  한숨 돌릴수 있었어요..

그럼에도 늘 씩씩하고 당당하신 아바지 며칠새 눈에 뜨게 핼쓱해지셨더군요..

남동생이 곁에 있기로 해서 인사드리고 나오는데 그 와중에도

낼 작은손녀 생일인데 하필이면 수술 받는날이라 아이에게 넘 미안하다고 봉투를 주시네요..

퇴원하면 맛있는 저녁 사주시겠다고 전해달라시면서..

이럴땐 참..뭐라 할말이 없어요..괜한 짜증도 나고..먹먹해지더군요..

딸아이들에게 말했어요..

엄만 이담에 할머니 할아버지 같은 좋은 할머니 못되니까 지금부터 기대 접으라고..

낼 아침 간단하게나마  먹이려 미역국과 불고기를 준비하는데 작은아이 살짝 뒤에서 안아주며

말합니다.

엄마..할아버진 영원한 우리가족 대장이시니까 분명 금방 일어나실꺼야..넘 걱정마..

참고있던 눈물이 나도 모르게 수도꼭지 튼것 처럼 쏟아져 식탁에 앉아 엉엉 소리내서 울었어요..

작은아이는 저 때문인줄 알고 당황합니다만 사실은 내 양심이 못참고 미안하다 소리치는거였어요..

아빠..미안해..아빠 정말 미안해..

제발 아무것도 아닌것처럼 아무일도 없었던것처럼 그렇게 다시 대장놀이 하셔야 해요..

아빤 우리집 영원한 대장이고 울타리고 세상 전부니까..

엄마는 하나밖에 없는 딸내미 생일날 무릎수술해서 생일도 못얻어먹게 하더니

하필이면 아빠는 손녀딸 생일날에 수술 받냐고 암튼 도움안되는 부부라고 말도 안되는 농담을 던지고

왔지만 사실은 생일 같은거 없어도 되니까 다시 건강하시기만 바래요..

아빠..편히 주무시고 낼 아침 웃으며 만나요..

 

덧글..울배우 생파로 한껏 들떠있는 삼뿔방에 때아닌 찬물 같아 민페끼치는거라 생각도 되지만

        가슴이 꽈악 막혀서 어디고 풀어야 했어요..저의 이기심을 이해해 주시길..

        친정아빠의 수술이 잘되길 진심으로 바라고 더불어 까만콩 20번째 생일을 조심스레 축하하고

        싶어서요..

        갑작스런 우환으로 울배우 생파 참석 여부가 좀 고민됩니다..하루만 더 고민 할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