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소한 일상의 흔적/내 마음속 기억

익숙해지지 않을 이별준비

찌에르 2013. 3. 30. 21:58

 

 

 

 

 

 

 

큰아버지께 다녀왔다..

해질무렵 부터 고약스레 빗방울이 떨어지더니 제법 바람이 쌀쌀하다..

퇴근 한 남푠을 만나 찾아 간 병실..

며칠전 급작스런 소식에 모두 긴장했는데 다행이도 후속조치가 잘 이루어져 위험한 고비는 한숨 넘기시고

주변 상황을 인지하실 정도로 좋아지셨다.

올해 87세..

전쟁통에 누이 하나와 막내동생인 울 아바지 데리고 한달만 피신해 있다 들어오라는 할아버지 말씀대로

남하하셨는데 그것으로 북쪽의 가족분들과는 생이별..

졸지에 두 동생을 거르린 가장이 되어 큰아버지는 소처럼 일하셨다고 한다..

같은 실향민이셨던 큰엄마를 만나 가족을 일구고 막내인 아바지 뒷바라지도 해주시고..

울아바지에겐 큰아버지는 형이 아닌 부모였다고 들었다.

큰아버진..말그대로 큰~아버지..체격두 건장 하셨지만 늘 웃는 얼굴에 인자하셨던 기억이다.

첫날..병원을 다녀오신 아바지는 반쯤 영혼이 빠져 나간듯한 모습 이어서 우린 아바지 걱정을 더 많이 했다..

4년전 폐암으로 하나밖에 없는 누이를 보내고 당신 역시 위암수술을 두번이나 받으신후 얼마되지 않아  

부모처럼 믿고 의지하던 단 하나의 피붙이 이신 큰아버지의 요로암 소식에 충격이 크셨는데..

큰아버지는 노환과 오랜 당뇨로 인한 합병증 으로 우울증까지 겹치셔서 몇년전 부턴 집에서 요양을 하시는 상태였다.

10가지도 넘는 각종 질환 치료제와 항우울증 약까지 복용 하시다보니 늘 멍한 상태이셨고

근래 들어선 명절에 인사를 가도 애기처럼 맑은 눈으로 웃기만 하셨었다.

급작스런 호흡곤란과 고열로 응급실에 실려 오셨고 하루를 넘기기 어려운 상태라 했다는데

다행이도 병원에서의 처치가 위급상황은 넘겨 주었지만  언제 상황이 나빠질지 알수가 없는 상태..

산소호흡기에 의존하시고 잠들어 계신 큰아버지의 모습은 마치 어린애 같았다..

그 좋던 풍채는 어디로 가고 숨소리도 작게 잠들어 계시는 모습에 눈시울이 뜨뜻해 왔다..

사실은 큰아버지와의 이별보다는 그 이별후에 남겨질 울 아바지의 상실과 비탄이 눈에 보이는것 같아서 아팠다.

사람은 어쩔수 없는 이기적인 존재..

내가 감당해야하는 울 아바지 슬픔의 크기가 큰아버지를 잃는 가족들의 슬픔보다 더 크게 느껴진다.

오마니 모시고 다시 찾아뵙겠다는 인사를  남기고 병원을  나서니 여전히 봄비가 내리고 있다.

헤어짐은 여전히 익숙해지지 않을.. 연습이 소용없는 아픔이다..